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

친애하는 친구여,

거짓말이 수천번 반복되어도 그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티칸은 과거에 자명하게 드러났던 거짓을 교활하게 말바꾸기를 하여 번복합니다. 이제는 이런 일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이 되었습니다. 현재 세계 무대에 서 있는 교황은 역사적인 거짓들을 마치 진실인양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종교적인 거룩함에 있어서 기독교 세계보다 카톨릭의 세계가 훨씬 뛰어나다는 교황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글은 특히 현재의 세계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번복되고 있는 거짓들의 배경을 알리고 있습니다.  필자는 성경을 참조하여 신중하게 이 문제를 다룸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교황의 거짓 주장을 거절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

– 리차드 베네트

교황 프란체스코는 ‘거룩한 아버지’의 신분으로 2015년 9월에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카톨릭 뉴스 매체인 ‘제니트’는 통상적으로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로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거룩한 아버지’라는 용어는 언제나 교황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는 “누가 당신의 ‘거룩한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거룩한 아버지와 맺는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주 예수께서 사용하신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용어는 오직 그분의 하늘 아버지를 말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자들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부를 자격과 특권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은 다른 복음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웹사이트 상에서 주장하기를 성 베드로로부터 교황 프란체스코까지 266명의 ‘거룩한 아버지들’이 계승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크게 보이는 중심점은 교황과 바티칸이다. 로마 교황은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면서 정치 및 종교 영역에서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역사 가운데 계속 승리하고 있다. 세상의 눈에는 감취어져 있고 조직적인 세력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참 교회는 인류 역사의 궁극적인 실체로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 교회를 대항하는 카톨릭 거짓 교회와 바티칸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따라 가장 우세한 세력으로 활동함으로 인하여 교황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세계의 역사 무대에서 주요 역할을 할 것이다.

로마 교회가 자신들은 역사 및 정치에 있어서 우월하며 탁월하다는 사실을 세계 무대에서 재주장하고 있는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현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통 이슬람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 와중에 ISIS가 활동하면서 서부 세계는 종교를 일종의 정치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교황청은 회교도들이 그들의 종교의 기원이 마호메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가운데 2015년에 카톨릭 교회의 기원은 회교의 기원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적인 정치 세력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무질서와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교황청은 자신들은 매우 안정된 상태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에 교황청은 베드로로부터 현재의 프란체스코 교황까지 교황직이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교황직은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공식적으로 게시된 교황들   

바티칸 웹사이트을 보면 초기 네 사람의 교황을 게시하고 있다. 그 게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바티칸 웹사이트:  http://w2.vatican.va/content/vatican/en/holy-father.html  2/11/2015)

교황 이름교황직 시작교황직 마침원래 이름생년 월일
1베드로64 또는 67갈릴리의 벳새다
2리노6879투시아
3아나클레토스

또는(크레토스)

8092로마
4클레멘트9299로마

초기의 네 명의 교황은 베드로, 리노, 클레토스, 그리고 클레멘트로 게시되어 있다. 이 네 교황은 로마 카톨릭 시스템의 토대와 전통이 되었다. 따라서 만일 이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불확실하다면 카톨릭의 전통 전체가 흔들린다. 노틀담 대학의 저명한 카톨릭 학자 리차드 맥브라이언(Richard P. McBrien)은 리노, 클레토스, 그리고 클레멘트는 불확실을 넘어 대단히 의심스러운 존재들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그의 책 <교황들의 인생: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울 2세까지의 교황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카톨릭 전통은 2세기 말 또는 3세기 초에 로마 교회의 첫번째 주교였던 성 베드로를 첫번째 교황으로 간주하지만 베드로가 로마에 첫번째 기독교 공동체를 세웠다는 점이나 또는 베드로가 로마의 첫번째 주교였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사실, 드러나는 증거는 오히려 카톨릭 교회의 주장과 정반대이다.)  로마 교회는 2세기 중반(서기 142-155년 정도)의 성 피우스 1세 교황때까지는 로마 교회는 여전히 그 지역 담당의 주교 제도 하에 있었다. 카톨릭 전통이 베드로의 직속 후계자들로서 거론하는 리노,  클레토스, 그리고 클레멘트 등은 로마의 주교로 활동한 적이 없다. (후계자의 목록은  리용의 성 이레니우스[서기 200년에 사망]와 역사학자 성 헤게시프스[서기 180년에 사망]에 의해 전달되어  종종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이사레아 유세비오스[서기 339년에 사망]에 의해 인증되었다.)

그 대신 로마 공동체에는 공동 지도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최초의 교황들로 여겨지고 있는 그들은 지역 장로들의 모임 또는 장로-감독들의 대표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는 공동체의 지도자들 중에 가장 대표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처음 4세기 동안의 교황으로 거론된 자들은 – 5세기 중엽 레오 1세가 분명하게 교황으로 등장하기까지 – 로마를 벗어난 주변 지역을 향해서는 상당히 제약된 권위를 가지고 활동하였다.

](Richard P. McBrien, Lives of the Popes:  The Pontiffs from St. Peter to John Paul II (HarperSanFransisco, 2000) Ch. 1, p. 25)

리차드 맥브라이언의 진술은 바티칸의 기본 전제를 철저하게 허문다. 사실,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보아도 로마의 목사들, 즉 주교들은 구원의 복음을 충성스럽게 보존한 것이 분명하다. 로마 황제로부터 오는 혹독한 박해 아래에서도 로마의 목사들과 그들의 교회는 충성스럽게 견디고 있었다.

초기 3세기 동안 기독교 믿음은 신속하게 널리 확장되었다. 로마 제국의 박해 하에서도 로마의 감독들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데 온 힘을 다하며 주께 충성하였다. 기독교 박해는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서기 313년에 밀란 칙령을 발표하면서 끝마치게 되었다.

처음으로 로마 주교가 시저의 계승자가 되다.   

서기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시저)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그 당시 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선포한 후 무너지는 제국을 하나로 연합함으로서 다시 제국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4세기 초에는 로마의 주교들이 자신들을 황제의 후계자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과거에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 도시는 로마 주교가 절대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서서히 다른 도시의 주교들과 제국의 군주들이 그를 황제의 후계자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로마 주교는 황제가 취하였던 “폰티펙스 맥스무스”라는 이름을 똑같이 취하게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폰티펙스 맥스무스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의미는 고대 로마의 ‘대제사장’을 의미하였다.)

왼편의 동전은 기원전 27년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새긴 동전이고, 오른 편의 동전은 교황 레오 3세를 새긴 동전이다. 두 동전 모두 폰티펙스 맥스무스를 의미하는 “포트 맥스”라는 약어가 새겨져 있다. 이는 교황들이 황제의 직함을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수 많은 증거들 중에 하나이다. (www.badnewsaboutchristianity.com/ad0_emperors.htm  1/26/2015)

한 참 후인 5세기 초에는 로마의 주교는 그 직위가 베드로의 후계직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로마의 주교 이노켄티우스 1세(401-417)는 자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권한과 특권을 수행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후계라는 주장이 성립되기까지는 4세기 이상이 지나야만 했다. 나중에 5세기에 또다시 주교 레오 1세(440-461)의 가르침에 의해 이 주장은 더욱 확고하여졌다. 하지만 성경은 사도 베드로가 로마로 갔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가 사마리아, 룻다, 욥바, 가이사랴, 그리고 안디옥에 방문한 사건은 신중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인, 그가 로마에 갔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성령께서 그토록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건을 건너뛰실리 없다. 로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지만 베드로를 향한 안부는 전혀 없다.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때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었는데 그때에도 그는 디모데 및 여러 교회에 보내는 그 어떤 편지에서도 로마 도시에서 그와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면서도  베드로에 대한 언급은 단 한번도 없다.)

베드로가 첫번째 교황으로서 로마에 있었다는 전제는 단지 로마교의 전통일 뿐이다. 베드로가 로마의 첫번째 주교였고 그 뒤를 이어 로마 주교들이 계승되었다는 것이 전통으로 믿어지는데는 수백년이 걸렸다.

로마 주교가 최고 높다는 주장을 위한 역사적인 바탕

6세기의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그 누구보다도 로마 주교를 가장 높게 세워 놓은 장본인이다. 그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차원에서 이 일을 이루었는데 종교 문제를 시민 법과 합쳐 버린 것이다. 그때 발생한 일에 대해 리로이 에드윈 프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는 동방 로마 제국에서 가장 높은 통치자였다. 그의 위대한 업적으로는 교회 및 신학 문제에 대한 법령을 제정한 것이다. 이 법령은 황제의 칙령으로서 로마 주교를 “모든 거룩한 교회의 수장”으로 앉혔다. 따라서 교황이 교회에서 최고 권위를 갖을 수 있는 법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Le Roy Edwin Froom,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Prophetic Interpretation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50) Vol.  I, pp. 507-508)

유스티니아누스의 칙령은 “로마 주교의 지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로마 주교들이 세속 권력을 취할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하겠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칙령이 발표된 즉시 로마의 주교들은 왕처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주교인 비탈리아누스(657-672)는 실제로 ‘교황’으로 불린 첫번째 인물이다. 그는 라틴어로 “파바 비탈이아누스”, 즉 교황으로 불리었다.(http://www.answers.com/topic/Pope-vitalian). 로마 교황이 유럽의 다른 주교들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 제국에서 주어진 직위를 충분히 수행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어, 서기 800년까지 북부 이탈리아의 튜린의 주교 클로드는 로마 주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로마 주교”의 세속 권력을 공식화한 것과는 별도로 바티칸과 그 지도층들은 훗날에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라는 노골적인 위조 문서를 만들어 역사적인 사기를 쳤다. 이 허위 문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주교 실베스테르(314-335)에게 그의 자산을 기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장 큰 영적인 권력을 주었다는 근거로 법적인 문서로 인정되었다. (허위 문서에 대한 복사본이 윌리의 개신교의 역사에 담겨 있다. – Wylie’s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I, Book First, Ch. 3, p.11 ). 철저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이 허위 문서가 만들어진 목적은 암흑 중세 시대 기간에 교황의 권력을 선언하기 위해 증빙 문서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교황 세력의 흥왕과 쇠퇴, 그리고 세속 권력

4세기부터 8세기까지 교황의 세력은 구-로마 제국  때에 왕들이었던 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크게 흥왕하였다. 8세기에 교황이 사라센 제국과 롬바르드 족의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프랑크 왕들은 교황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로부터 빼앗은 도시들에 대한 통치권을 교황에게 허용하였다. 그 보상으로 서기 800년에는 악명 높은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 샤를마뉴에게 관을 씌우고 황제로 임명하였다. 이렇게 하여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황과 황제의 법적 권한에 대한 암투가 시작되었다. 이 암투는 놀랍게도 역사 가운데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Hendrickson, 1885) Vol.  4, pp. 250-253). 1203년에는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가 제국의 수장으로서 시민법을 사용하여 모든 백성에게 로마 교회의 교리와 전통에 복종하라고 명을 내린 후에 그의 종교 재판을 통해 강요하였다.

바티칸의 266명의 거룩한 아버지들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패한 사람들이었다.

교황 호노리우스는 625년부터 638년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제 여섯번째 교회 공의회(680-681)에서 이단으로 판결을 받았다. 그는 또한 교황 레오 2세 및 그 이후의 로마 교황들에 의해 이단으로 판결을 받았다.(William Webster, The Church of Rome at the Bar of History pp. 63-71.  Peter DeRosa, Vicars of Christ: The Dark Side of the Papacy (Crown Publishers, 1988) pp. 208-209. See also Catholic theologian Hans Kung, The Catholic Church: A Short History  p. 60.)

903년에는 교황 레오 5세가 겨우 한 달을 집권하였는데 그 이유는 산 다마소의 추기경인 크리스토퍼가 레오를 감옥에 가둔 후에 자신을 교황이라고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르기우스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크리스토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레오는 감옥에 있다가 살해되었고, 크리스토퍼 역시 세르기우스의 명령에 의해 감옥에서 살해되었다.(McBrien, pp. 150-151) 세르기우스는 904년부터 911년까지 교황 세르기우스 3세로 집권하였다. 비도덕적인 살인자 세르기우스 3세는 바티칸의 “거룩한 아버지들”의 목록에서 120번째 서열에 있다.

교황 요한 12세는 955년부터 963년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11살에 교황이 된 후 역사 가운데 그 어떤 교황보다 가장 부도덕한 삶을 살다가 결혼한 남의 아내의 침대에서 뇌졸증으로 사망하였다.”(McBrien, pp. 435, 157-159; see also DeRosa, pp. 211-215) 이렇게 악명 높은 교황 요한 12세는 바티칸의 “거룩한 아버지들”의 목록에서 131번째이다.

독선적인 크레센티 일가는 10세기 중엽부터 11세기까지 로마 교황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할 만큼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후 투스쿨룸의 백작 테오필락토는 투스쿨룸 일가의 정치 세력을 힘입어 로마 교황들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였다. 사실, 두 귀족들이 패권을 다투던 200년 동안 교황의 위치는 혼동의 상태였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의 크레센테 일가와 투스쿨룸 일가는 마치 교황 자리가 개인 소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서로 빼앗기 위해 다투며 싸웠기 때문이다.

1073년은 지독한 부패 기간에서 돌아서는 해였다. 이제 교황이 되려면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쳐 정해진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육체의 정욕을 훨씬 넘어서는 세속을 향한 절대 권력에 대한 교황들의 욕심은 잠들지 않았다.

교황 그레고리 7세 (힐데브란드)는 그보다 앞선 그 어떤 교황보다 야망이 컸다. 그는 교황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것으로서 영적이든 세속적이든 모든 권세와 권력이 “베드로의 보좌”에 복종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장래에 세워질 방대한 교황 체제를 꿈꾸던 장본인이 바로 교황 그레고리 7세였다. 그의 목표는 교황이 교회와 국가의 모든 지도자들 가운데 최고의 통치자와 최고 재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교황 직위는 하나님의 권한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황제들과 왕들 위에 교황이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였다. 그러한 그의 꿈이 실제로 구현되는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레고리 7세의 명석함과 힘찬 야망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부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현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악한 구현은 고레고리 7세(1073-1085)의 재임 기간 동안에도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교황들은 그레고리 7세가 구축해 놓은 제도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들은 거짓과 십자군과 금령 등을 통해 온 세계를 정치적으로 교황 아래 두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다. 고레고리 7세의 재임 이후로 약 200년 동안 교황의 권력과 영광은 계속 증가하였다. 이를 위해 로마의 종교 이름 하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희생 되었고 수많은 왕들이 폐위되었으며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주택과 농가들이 황폐하여졌다.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1198-1216)와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1294-1303)는 교황이 종교 및 정치 권력을 모두 휘어잡는데 있어서 극적인 역할을 해내었다.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알비주아파를 대항하여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후에 누구든지 그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전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게 치러졌다. 모든 마을과 주민들은 무차별하게 살해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그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들과 살해 행위는 수많은 기록에 의해 역사에 남겨져 있다.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는 완고하면서도 야망이 많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변덕이 심하고 허망한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교황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이며 이에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그의 교황 칙서인 “우남상탐(Unum Sanctum)”에서 언급한 내용은 매우 유명하다.

“우리는 모든 인간들에게 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필수적으로 로마 교황에서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말하고 정의하고 공포한다.”(Henry Denzinger, The Sources of Catholic Dogma. (St. Louis, MO:  B. Herder Book Co., 1957), #469.)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로부터 교황 피우스 7세때까지 75명의 교황이 재임하면서 끔찍한 종교 재판을 통해 고문과 살인과 화형과 재산 몰수를 강행하였다. 고문을 당하면서 살해 당한 대다수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형틀은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던 고문 방식 중에 하나였다. 이 기구는 고문 대상을 평면 위에 눕힌 후에 그의 손과 발목을 사방으로 잡아당길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교황의 종교 재판관은 고문 대상의 사지를 점점 더 당기면서 심문을 진행하였다. 고문을 받는 자의 몸은 점점 찢어질듯 당겨지면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다.

고문관은 기구를 사용하여 심문 대상의 몸을 계속 당기다가 실제로 심문 대상의 몸의 사지가 연결부분에서 빠지기도 하였다. 고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문 대상을 졸도 시키거나 상해를 입혀 죽이는 것이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계속 로마 카톨릭 교회에 복종하기를 거절하면 그 사람은 화형장으로 보내어졌다.

최근 들어서 교황들은 더 이상 분명한 부패를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간교하게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현재 교황은 자기 뜻을 강요할 수 있는 군사력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카톨릭 법이 보여주는 것처럼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에 대한 절대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적절한 때가 되면 로마 카톨릭 제도 내에 그 절대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절대법을 세울 것이다. 이를 위해 일반 시민들이 카톨릭 교회의 목적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는 시민 공권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교황 교회는 일종의 국가 정부이기 때문에 소위 “협약”(Concordats)이라고 불리는 정치 협력에 의해 교황 교회의 입지를 향상시키고 있다.(협약(A Concordat)은 국제적인 차원의 조약이다. 따라서 협약은 나라와 바티칸을 법적으로 구속한다. 각 나라들과 바티칸의 협약 내용으로는 교리 채택, 로마 카톨릭 교육 방식 채택, 로마 카톨릭 믿음 실천, 경제 부분 등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교육, 교회 자산에 관련한 법률 협상 등이 있다. 이러한 시민 생활과 관련한 시민법의 법률적인 내용이 그 나라와 바티칸 사이에 동의된다.)

1989년 이전까지는 교황의 성좌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과 국제 계약을 맺었다. 바티칸의 간섭과 조종은 교황과 협약을 맺은 나라들 내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피우스 12세와 히틀러 사이에 맺어진 협약이 아직도 현존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 바티칸이 여러 다른 나라들과의 협약을 통해 내정 간섭을 하려는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1950년부터 1999년까지 바티칸과 128개 여러 국가들이 국제 협약을 맺었다. 최근 단지 9년 기간에 교황의 성좌와 여러 나라들 가운데 43개의 협약이 체결되었다. 심지어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로마와 법률적인 합의에 들어간 상태이다. 더욱이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국가 법 및 국제 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특히 교황 대사가 파견되어 있는 국가 내에서는 바티칸이 그 나라의 정치에 조종 및 간섭을 하고 있다. 현재, 바티칸은 대사관 차원에서 179개 국가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 권력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영적인 통제에 복종해야 하고 그러한 권력은 각 교황이 그의 야망과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여 왔다. 따라서 교황의 사악함이 더 이상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각 나라의 정부 및 법적인 권력 구조 내에 간교하게 타고 들어가 있다.

결론

참 신자들은 ‘아버지’라는 친근한 호칭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붙들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체험한다. 하지만 이와는 정 반대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법은 인간의 마음과 의지는 하늘 아버지가 아니라 소위 로마의 ‘거룩한 아버지’에게 드려져야 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법은 “비록 (카톨릭) 믿음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지식과 의지의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는 믿음과 도덕에 대해 최고의 교황 또는 주교단이 반포한 교훈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교회 법전 752항)

주 예수께서 명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주님의 명령과 교황의 명령은 서로 상충한다. 당신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당신은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두 주인 사이에서 중립에 설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즉, 당신은 누가 당신의 주인인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주 예수께서 이러한 명령을 주셨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마 23:9).

따라서 하늘 아버지만이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참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서만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는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로 부를 것을 가르치며 요구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교황을 앉혀 놓은 카톨릭 제도에 묶여 있는 카톨릭 교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그들의 영적인 어둠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의 은혜를 빙자하여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없다. 지금 우리는 카톨릭을 위해 긴급하게 기도할 때이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성경은 분명하게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한 것이며 오직 그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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