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절대 권위와 천주교

리차드 베네트

성경의 절대 권위라는 주제에 대해 천주교 중심부 내에서 어떤 문제와 의심이 있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난 여러 해 동안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최종 권위이며 구원하는 믿음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바탕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성경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자들은 주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성경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객관적 바탕입니다. 성경의 믿을만한 권위에 근거해서 믿는 믿음은 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바들을 다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합니다(알았사옵나이다)” (요 6:69).

이와 같이 성경과 참된 믿음은 뚜렷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록된 말씀은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진리와 성경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대 제사장적인 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진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구약을 통해 끊임없이 선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는 진리”라는 내용과 일치되는 선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기록된 말씀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언급은 기록된 성경 외의 다른 자료에 적용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믿는 자의 진리의 기준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만이 최종 권위를 갖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및 주의 사도들은 성경만을 최종 권위로 언급하셨습니다. 광야에서 3번의 시험을 받으실 때도, 주 예수님은 “기록된 바”라고 말씀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마 4:4, 7, 10). 주님은 “기록된 바”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받아드리시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주께서 마태복음 5:17-18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더욱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외 다른 것에 최종 권위를 둘 때 정죄하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에 둘 때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위치에 둠으로써 진리의 기반 자체를 부패시키려는 것을 보시고 매우 엄하게 질책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막 7:13). 성경만이 영감된 것이기에 성경만이 궁극적인 권위입니다. 성경만이 모든 인간의 전통과 생각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립니다.

주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잠 30:5)고 가르칩니다.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이런 명령을 합니다.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잠 30:6). 이 가르침과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더럽혀지지 않고 순전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분의 기록된 말씀에 영감을 불어 넣으시며, 오직 주의 기록된 말씀만이 믿음의 유일한 규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이 믿음의 규정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상반되는 어떤 교회든지, 또는 믿음의 삶에 있어서 성경의 위치를 열등한 자리에 두려고 한다든지 하는 교회는 기만으로 속이는 거짓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한 교회는 하나님을 보좌에서 몰아내고 교회 자체가 절대 권위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해석 원칙: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성경의 절대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진리의 말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성경의 방법과 일관됩니다. 이에 대해 시편 36:9절은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안에서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와 똑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이 내용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비치는 빛 안에서 보인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성경 자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을 마련합니다. 성령의 감동 하에 있는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 1:20-21). 베드로가 분명하게 한 것은 성경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경 해석의 자료도 성경 그 자체와 똑 같은 자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빛에 의해서만 성경은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주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이 일을 성경에 의해 하시기 때문에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즉, 성경 그 자체는 그 자체의 진리를 해석하는 법칙입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6).

성경의 충분성과 분명함

사도 바울은 성경의 완전한 충분성을 선포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최종 진리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성경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문법적 해석을 하도록 그 자체의 영적 해석 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명백한 성경의 부분들은 처음에 애매해 보이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합니다.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성도들은 기도와 부지런한 비교 연구를 통해 복음의 지식과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역 아래서 성경과 성경을 비교함으로써 마음이 새롭게 된 성경 독자들은 상상이나, 자기-중심적 해석이나, 신비적 속임수, 종교적 광신, 사교적 이단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초대 교회와 신약 성경

카톨릭 교회는 전통을 합리화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 중에 초대 교회 때는 신약 성경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이미 사도 바울의 글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5-16). 베드로는 또한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성도들이 베드로가 전에 말했던 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벧후 1:12).

교회의 가장 초기 때부터 신약 성경의 주요 부분은 이미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영감 하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가 그 편지를 처음에 받는 교회들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읽히도록 명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사도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유통되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기록된 말씀을 믿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언제나 신자들이 순종하여왔던 내용입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6).

초대 교회는 신약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전통이 필요하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는 초대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두 가지 간단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정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사도들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주님의 권위를 부여 받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받은 대사들로써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과도기에도 사도들은 구약 성경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는데 어렵지 않았으며 믿음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 권위적인 가이드로 구약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참조, 행 17:2-18, 28:23; 갈 3:8; 롬 9:17). 신약 성경의 글들은 마지막 사도가 그의 일을 마쳤을 때 성경의 정경으로 합쳐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기록된 계시인 성경은 구원에 대한 마지막 예언의 말씀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진 권위의 원천

카톨릭 교회는 모든 계시된 진리들에 대한 교회의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터놓고 말합니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결과적으로, 가톨릭 교회에 계시의 전달과 해석이 위임되어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모든 계시된 진리들에 대한 교회의 확실성을 거룩한 성경에서만 가져오지 않는다. 성경과 전통, 이 둘은 동등한 헌신과 경외함으로 귀하게 여겨지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카톨릭 교회 교리 2쇄, 구문 82).

이 언급은 성경의 충분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성경 권위의 유일성, 즉 성경만이 주의 모든 피조물 위에 모든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교회가 자신은 기독교라고 하면서 전통과 성경을 똑같이 동시에 사랑한다고 하면 이는 그 교회는 성경을 아무 소용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의 비서를 동등하게 사랑한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랑은 간음입니다. 마찬가지로 바티칸의 교회 전통을 향한 “동등한 헌신과 경외”는 영적 간음인 것입니다. 전통을 향한 이러한 “동등한 헌신과 경외”는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하지 않고 성경에 충성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교황의 주권 주장

카톨릭 내에서는 절대 진리를 위한 기반이 성경의 하나님의 무한한 권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로마 교황,한 사람의 권위가 절대 진리의 절대 권위입니다. 궁극적인 권위는 집권하는 교황의 결정과 칙령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공식적인 카톨릭 문서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티칸 교회 법전(Vatican canon law)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최고 권위의 교황은 그의 직분과 관련해서 절대 오류가 없는 가르침의  권위를 소유한다. 그는 모든 신자들의 최고 목자이며 선생이시다. 교황이 명백한 행위로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교리이던, 도덕에 관한 교리이던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법전 749).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절대 무류는 하나님의 속성이지 사람이나 사람의 단체의 속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 전지, 절대 무류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있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소유하실 수 있는 것으로서 피조물에게 전달되거나 위임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선포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 43:10)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절대 무류의 가르침의 권위”를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교황은 신이라는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바티칸의 교리는 이러한 교회를 더욱 부추깁니다. 교황은 “거룩한 아버지”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것입니다. 절대 무류를 주장하는 이러한 표현보다 교황의 교만을 더 드러내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교황은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으면서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은 신성하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형식과 예식과 성사들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은 공식적으로 교회의 전통은 신성하다고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신성한 전통과 신성한 성경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통한다. 이 둘로부터 똑 같은 신적인 샘이 흐르며, 같은 형태 안에서 하나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가며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신조 구문 80).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성한 전통이 신성한 성경과 같은 원천을 갖고 신성한 성경과 함께 하나를 형성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성한 전통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주장하길, “신성한 성경은 성령의 호흡 하에 글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룩한 전통은 전부 주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 사도들에게 위탁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교회의 전통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되며 따라서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의 조명을 받아 그들의 설교를 통해 그 전통을 충성스럽게 보존하고 설명하고 널리 전파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신조 구문 81).

이런 가르침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주의 거룩한 말씀에 대항하는 신성모독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그 무엇과도 섞여서는 안되다고 경고합니다. 만일 섞이면 저주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길, “성경은 폐하지(나뉠 수)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전통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카톨릭의 주장은 말 그대로 성령에 대항하는 신성모독죄입니다. 성령은 친히 주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전달하십니다. 성령께서 우상 숭배와, 미신과 강령술을 지지하는 불결한 전통을 전달하실리 만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홀로 진리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신자들의 마음 안에 있는 참된 믿음을 인치십니다. 성령 자신의 신적인 빛과 효력과 능력에 의해 성령의 증거가 기록된 말씀을 안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임합니다. 성령이 자신의 빛과 권위로 성경을 증거하는 것은 성경의 기원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주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가져 옵니다.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교리를 정직하게 살펴보면 권위에 대한 교회 주장은 참된 성경적 바탕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주의 기록된 말씀 안에 있는 주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완전히 찬탈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믿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구원

성경의 확실성과 구원하는 믿음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롬 10:17)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믿음이 서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반은 다름 아닌 조금도 거짓을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마음은 주께서 하신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은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게 하셔서 그 영혼에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라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8). 그러면 어떤 규칙 또는 어떤 힘에 의해 사람이 의롭게 됩니까? 성경은 수사적으로 같은 질문을 합니다.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7). 신자들은 혼동 속에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자랑할 것이 없이 온전한 확신과 능력을 가져오는 은혜의 역사 또한 믿음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확신 앞에서 모든 의심을 물리치는 자아 부인적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은혜의 통로 또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즉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지함으로 사람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벧전 1: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실체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참이라고 믿고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의 말이 참이라고 믿고 행동하며, 법정에서 맹세하고 말한 것들이 참이라고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변론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9-12). 그렇다면 믿음은 주님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끈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해 승인됩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은”(눅 24:25)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며 전통 같은 뭔가 다른 것을 기록된 말씀과 같은 자리에 둡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경의 권위와 능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극도로 심각한 것은 교회가 전통과 성경은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과 또한 성경을 사랑하는 만큼 교회 전통을 사랑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구원하는 믿음의 기반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확실성과 진리와 타당성을 맛보며 즐거워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포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성경처럼 그렇게 큰 능력을 가진 책은 없습니다. 그 어느 것도 성경만큼 사람의 마음과 양심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매우 중대한 질문은 당신은 성경의 절대적 신실함을 믿으며 또한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영광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다면, 우리는 다 함께 기쁨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