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구원과 카톨릭 성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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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베넷

아담의 죄 때문에 인류는 영적으로 죽어서 태어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의 상태를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엡 2:1)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주어진 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는 것”(롬 3:24)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 예수님께서 속량하신 구속에 의지할 때 주어지는 것으로써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칭의)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완전하신 삶과 또한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위한 대가를 완벽하게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외에는 우리를 영적 죽음에서 살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은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생명으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7-9).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 6:29).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믿음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사도 바울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예수 그리스도는 인격적으로 지극히 거룩합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악으로 죽은 자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죄악에 대해 법적으로 형량을 치르기로 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죽으심을 포함하여 주께서 하신 모든 신실한 행위들로 인한 주의 의로움은 신자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죄’가 되도록 법적으로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주의 백성들의 모든 죄악이 주님께 전가됨으로써 주님은 ‘죄가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들의 것으로 간주함으로 인해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분명한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대해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의 공로가 실제로 신자들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은 “의로운 자”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마 25:40).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경의 말씀대로 크게 찬양을 외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시 71:15-16).

구원에 관한 카톨릭의 공식적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캐톨릭 교회는 사람의 행위와 의식들은 은혜의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성사 예식들은 구원을 위해 필요하며 은혜의 수단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가르침은 그들의 물리적인 성사 예식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은혜는 성령의 은혜라고 매우 강조합니다. 따라서 로마 교회는 공식적으로 “교회는 구원을 위한 새 언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성사 은총(은혜)’는 성령의 은혜이며 각 성사에 알맞게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다” 라고 가르칩니다 (캐톨릭 교회 신조 구문 1129). 카톨릭 교회는 칠성사를 주장하는데 이 일곱 성사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성사입니다. 신조 구문 1113은 “교회에는 칠성사가 있다. 즉, 세례 성사, 견진 성사, 성체 성사, 고해 성사, 병자 성사, 신품 성사, 혼인 성사가 있다”라고 선포합니다.

구원에 대한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구원은 세례 성사 때에 발생하는 새 출생으로 불리는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교황 교회는 공식적으로 “거룩한 세례는 모든 기독교 삶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서의 삶으로의 통로이고, 다른 성사들로 접할 수 있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죄로부터 자유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교회에 연합되고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말씀 안에서 물을 통한 중생의 성사이다” (신조 구문 1213) 라고 가르칩니다.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유아 세례(영세)를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혜의 순수한 호의는 특히 영세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영세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매우 귀중한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다” (신조 구문 1250).

세례 성사에 대한 바티칸의 공식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복음을 주시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으로 자명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고 주님께서 선포하십니다. 믿음은 구원하는 은혜의 열쇠이며 불신앙은 가장 저주받는 죄입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고 세례는 믿음에 따라오는 종교적 의식으로서 단지 그 믿음을 증거할 뿐입니다. 이에 대한 증명으로는 이 구절의 후반 부에서 무엇이 빠져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비록 세례를 받았더라도 만일 믿음이 없다면 그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성과 또한 개인적인 죄악들 때문에 정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신적인 공의가 그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하는 믿음 외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믿음은 즉시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칭의를 가져옵니다. 바티칸의 성사적인 “능력의 약속들”은 단지 사람을 속이는 것이며 주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조롱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롬 10:17). 사도 바울의 사역 중에 빌립보 간수가 고뇌 가운데 이러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때 사도 바울의 분명하고 직선적인 대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행 16:30-31). 그래서 간수와 그의 식구들은 믿기 위해 주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에 성경은 바울이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2)고 증거합니다. 따라서 세례에 대한 바티칸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분명하게 구원하는 참된 믿음을 거짓 모방한 가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은 생명이며 구원입니다. 세례는 주님이 명하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세례는 구원하는 믿음을 증거하며 각 개인의 영혼에 완성된 그리스도의 일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과 새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은 세례 의식이 아닙니다. 구원과 새생명은 주의 은혜로운 복음의 진리에 의해 임합니다.

카톨릭 고해 성사, 고행 성사

성경은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악을 용서 받는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행 13:38)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과 함께 자신에게 전가된 100%의 의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은 후에 죄를 지으면 이는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어야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관계를 풀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과 예식은 신부를 통해 죄악을 사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서에 따르면 신부를 통한 죄사함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세례 성사를 받은 사람은 고해 성사를 통해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할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세례 성사가 필요한 것처럼 고해 성사는 세례를 받은 후 타락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신조 구문 980)라고 언급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교회가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전혀 없다고 가르칠 정도입니다. 신조 구문의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죄라 하더라도 정직한 회개만 한다면 교회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없다” (신조 구문 982). 카톨릭 교회는 죄를 사하는 신부의 권한은 하나님이 천사들과 천사장에게 준 권한보다 더 크다고 주장합니다. 교회의 신조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제들은 하나님이 천사들이나 천사장에게 주지 않으신 권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 위에 계신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사제가 행하는 행위를 확증한다. 교회 내에 죄사함이 없다면 내세의 생명의 소망이 없으며 영원한 자유의 소망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죄사함을 베풀 수 있는 선물을 주심을 감사하자” (신조 구문 983).

로마 교회가 하나님께서 신부에게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을 지지하는 성경 인용으로써 신조 1485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 첫째 날인 저녁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19, 22-23).

이러한 주장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은 요한복음 20:23절을 그대로 연구해 보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어떤 ‘성사 예식’을 통한 사법적인 죄의 사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의해 선포되는 죄사함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주님께서 짧은 표현으로 복음을 요약하여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자들을 향해 용서를 선포할 권한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표현된 이 사명은 이 구절은 누가복음 24:47절, 마태복음 28:18-20절, 마가복음 16:15-16절과 비슷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이 사명을 이해하고 순종했음을 분명하게 증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해 신부를 임명해서 각 사람들이 고해소에서 죄를 속삭이는 것을 친밀하게 듣도록 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주님은 주의 복음을 선포할 자들을 임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리를 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3). 성경이 말하는 죄사함의 방법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소에서 고백 신부에게 속삭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사함의 방법이 아닙니다.

병자 성사

카톨릭 성사의 또 다른 예는 병자 성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로마 교회는 병자 성사의 은혜를 통해 병자의 고통이 주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연합함: 병자 성사의 은혜에 의해 병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더욱 가까이 연합할 수 있는 힘과 은총을 받게 된다. 병자 성사로 병자는 구세주의 구속적 고난에 조정됨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성결하게 된다. 이제 원죄의 결과인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데 바로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신조 구문 1521).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메시지는 병들어 죽어가는 영혼들의 귀에 들려주는 저주스런 거짓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은 주님의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한다”는 교리는 고통 받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통이 주님의 고통에 뭔가를 추가할 수 있다고 믿게 함으로서 거짓 믿음을 만들어 내는 곡해인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은 철저한 거짓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참조, 히 1:3; 롬 3:28; 엡 2:8-9; 디 3: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백성들을 위해 두 가지 의식, 즉 세례와 성찬만을 명하셨습니다. 그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께서 직접 명하셨다는 점과 그리고 그 둘은 주님을 증거한다는 점입니다.

야고보서 5:14-16절에서는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것과 기름을 바를 것을 권하는데 이는 “믿음의 기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16절은 이 단락을 결론지으며 요약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로마 교회는 기도 권면에 관한 이 구절을 취하여 신부들이 시행하는 성사 의식에 꿰어 맞춥니다. 결국 로마 교회는 죽어가는 고통 당하는 노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사의 잔인함 아래 살고 있는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자비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그리스도의 자비 가운데 병들고 늙은 카톨릭 교우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 그들은 성경이 약속한 영생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1-12).

사람의 영혼으로 장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우리는 카톨릭 교회가 시행하는 칠성사 중에 세가지를 분석하였습니다. 우리는 후에 카톨릭 교회가 가장 효과적으로 여기는 성체 성사, 즉 미사를 점검할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성사 예식을 통해 장사를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히 12:29)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주의 복음에 가장 큰 원수는 물질주의나 정욕이 아니라 주님의 자리에 대신 서 있는 영적 교만과 배도입니다. 각 개인의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어야지 교회의 예식을 믿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각 개인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 아버지의 독생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 분을 믿어야 합니다 (요 1:14). 그때 우리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요 1:16)임을 알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 성사가 필요하다는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교회의 성사로 대치해 버린 아주 무례하고 무익한 행위입니다. 그들은 세례 성사, 고해 성사, 병자 성사를 통해 영혼을 상품화하여 장사하고 있습니다 (참조, 계 18:12-13). 영광의 주님을 믿는 단순한 믿음의 행위를 여러 의식들로 대치하였습니다. 사탄의 계획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의식들과 헌신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성사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물질적인 상징들을 바라보게 하면서 그것을 “성령의 은혜”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항하는 신성 모독입니다. 이는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부가 하나님의 은혜를 고정된 방법에 따라 자동으로 분배해 줄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장사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 주의 명령과 약속이 다시 되풀이 되어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18).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은 주의 자녀들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영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존엄과 특권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경건의 모양으로 대신하려고 할 때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이 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자비하십니다. 주께서 은혜 가운데 선포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성경에 의하면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영광과 찬송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