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신자들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카톨릭 신자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는 대단히 민감한 이 주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48년 동안 카톨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 신자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성경적인 믿음의 관점에서 분석해볼 때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카톨릭 교인들은 제가 그들이 오랫동안 배워온 카톨릭 교훈의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주는 점에 감사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복음주의자들 중에도 제가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교인들의 하나되기 운동” 및 “기독교 교회의 하나됨”과 같은 교회 일치 운동의 거짓됨을 드러낸 것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이 글을 여러분의 가정이나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영생을 얻을 있는가?

리차드 베네트

저는 48년 동안 카톨릭 신자로 있었으며 22년 동안 카톨릭 사제로 일하면서 카톨릭 교회를 믿었습니다. 저는 성례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른 신부들처럼 저 역시 카톨릭 교인들에게 그들이 교회에 충성하다가 “거룩하게 만드는 은혜”의 상태에서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그릇되게 속은 자들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제 저는 “카톨릭과 영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카톨릭 교인으로서 저는 카톨릭이 제 영혼에 끼친 영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카톨릭은 제게 몸에 배어 있는 제 2의 본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제 이 글에서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카톨릭 교도와 로마 교황과의 관계와  신중하게 비교해 볼 것입니다.

성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는 대단히 중대한 주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인은 제일 먼저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이다”라는 배우며 그 내용을 믿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이는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인 다음 내용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교회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보다 선재하며 우리의 믿음을 낳으며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고 보양한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이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은 자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카톨릭 교회 신조 구문 181)

따라서 카톨릭 신자들은 날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에 모시는 대신에 ‘교회 어머니’를 먼저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치는 독실한 카톨릭 신도들로 하여금 어느새 교황을 “거룩하신 아버지”(the Holy Father)로 모시게 됩니다. 사실, 카톨릭 종교 신문인 제니트(Zenit)는 공식적으로 언제나 교황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또한 대부분의 카톨릭 교도들에게 있어서 “거룩하신 아버지”(the Holy Father)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교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개념

성경은 주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표현을 170 번 이상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막 14:36)라고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라고 설명하여 줍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롬 8:13-17).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의 사랑을 바라는 참 신자는 어느새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8)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믿고 부를 참된 신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하지만, 이와 달리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법규는 교인들에게 그들의 마음과 뜻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로마의 교황에게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사람의 지식와 의지는 종교와 관련해서 (카톨릭) 믿음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교황 및 주교 단(the college of bishops)이 믿음과 도덕에 대해 언급하는 가르침에 순복되어야 한다.”(교회법 752)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명하셨습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명령과 교황의 명령은 서로 상충합니다.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서로 상충하는 두 주인 사이에서 사람은 반드시 한 주인을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카톨릭 신자는 누구를 진정으로 주로 모실지 결정해야 합니다.

더욱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마 23:9).

이는 하늘 아버지에 대해 주께서 하신 본질적인 메시지입니다. 즉, 하늘 아버지는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시며, 참 신자들은 하나님을 향해서만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는 교황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바티칸 웹 사이트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6월 8일에 바티칸 정원에서 행한 연설 직후에 “거룩하신 아버지의 연설”(Address of the Holy Father)이라고 올려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시며 모든 것을 주권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주 하나님은 완벽한 최고의 주권을 지니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주제에 있어서도 교황의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공식적으로 선포하며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포는 성경과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직분 및 모든 교회의 목자로서 전체 교회를 향한 완전하고 전 우주적인 최고의 권세를 지닌다. 교황은 언제나 아무런 저촉없이 그 주권를 행사할 수 있다.”(신조 구문 882)

이처럼 로마 교황은 오직 주 하나님께 속한 모든 교회에 대한 주권을 자기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카톨릭 교회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집요하고 교만하게 하늘의 하나님의 지위를 자신들이 취하였으며 그 권위를 행사하여 왔습니다. 예를 들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1302년 교황 칙서 “우남 상크탐”에서 “더욱이 우리는 모든 인간에게 선언하고 말하고 정의하고 선포하기를 그들은 구원을 위해 전적으로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 Henry Denzinger,  The Sources of Catholic Dogma (1984), #469 )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황의 교만한 선언은 최고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신성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구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그 목적을 이루어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의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거저주는 선물입니다. 이에 성경은 죄인들은 은혜에 의해 구원 받는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죄의 다스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다스릴 때 제거됩니다. 이에 성경은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고 말합니다. 은혜의 풍성함은 죄로 인한 악함을 훨씬 넘어섭니다. 주를 믿는 죄인이 그리스도 예수를 대속주와 보증으로 삼고 의지하면 그는 자신의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구원을 받으려면 교회의 성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로마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구원을 얻으려면 새 언약의 성례가 필요함을 확신한다.”(신조 구문 1129).

이에 카톨릭 교회는 칠성례를 제시한다. 성령의 은혜는 교회를 통해 칠성례를 수단으로 임한다고 말합니다(http://www.catholic.org/prayers/sacrament.php, “성례는 은혜를 부여하며 성례를 행하는 행위 자체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기에 신자들로 하여금 이 은혜를 가장 풍성하게 받을 수 있도록 가장 분명한 효력을 나타낸다.”) 바티칸은 이처럼 상징적인 성례를 구원을 얻기 위한 효력있는 원인으로 그릇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을 빙자한 미혹의 방법들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으며 하나님으로부터 환심을 얻으려는 여러 종교적인 행위들과 인간의 노력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 및 행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것들로서 영원한 저주 하에 놓이게 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회는 사제들을 임명할 때에 칠성례를 시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제들은 천사들과 천사장도 받지 못한 특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 위에 계신 하나님은 사제들이 땅에서 시행하는 것을 확증하신다.”(신조 구문 983)

그러나 신약에서는 제사를 시행하는 사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직 장로들과 목사들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입니다(참조, 행 20:17, 28; 벧전 5:1-4).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카톨릭 교회의 신앙 체계는 사람들의 영혼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복음은 각 사람 앞에게 모든 악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그 능력은 사람을 일으켜 생명과 평강과 천국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복음은 주의 구속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영생을 계획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영광스러운 은혜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만듭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참조, 요 1:1-4). 그리스도로부터 영생은 하늘이든 땅이든 참 신자에게 주어집니다(참조, 요 1:12-13). 하지만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는 로마 카톨릭의 성례를 통해 온다고 가르칩니다(http://www.adelaide.catholic.org.au/our-faith/sacraments). 누구든지 카톨릭 교회의 성례 시스템을 믿고 그것을 의지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사와 성체를 믿는 카톨릭 교도

로마 카톨릭의 중심에는 미사와 성체가 있습니다. 바티칸 제 2 공회는 미사와 성체를 “기독교 전체 삶의 원천이며 절정”(the fount and apex of the whole Christian life)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로마 교회는 미사는 희생 제사이며 갈보리 십자가의 희생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하나의 희생 제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성체의 희생 제사는 하나의 희생 제사이다. 즉, 희생 제물은 하나이며 같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렸던 희생과 똑같은 희생 제사가 사제들의 사역을 통해 드려진다. 오직 제사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드려지는 신성한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단에서 피흘려 바친 그 희생 제사와 같은 것이며 단지 피 흘림이 없는 방법으로 드려진다. … 미사는 참으로 화목의 제사이다.”(신조 구문 1367).

하지만 피없는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모순됩니다.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피없는 희생 제사는 말도 안되는 모순으로서 오직 미혹하는 속임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성만찬은 희생 제사가 아니라 기념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희생물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표입니다. 참 신자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을 기억하며 그분이 재림하실 때까지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참 신자가 주님의 성만찬에 대해 믿는 것과 카톨릭 교도가 미사와 성체에 대해 믿는 것이 얼마나 크게 다른지요! 참 신자를 향해서는 더 이상 죄로 인한 수치와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지니며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완성된 희생 제사를 참으로 믿는 자들을 위해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확보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미사에서 드려지는 신성한 제사’를 믿고 의지하는 가련한 카톨릭 신자를 위해서는 주의 구원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카톨릭 교인은 그리스도 예수님께만 기도하지 않고 마리아와 성자들에게도 기도한다.

참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유일한 중보자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복음의 영광은 신자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인은 마리아 및 공인된 성자들에게도 기도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죽은 자와의 교통: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교통은 죽은 자와의 교통에서 충분하게 느껴집니다. 교회는 교회가 시작되던 때부터 교회의 순례자들과 함께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존경함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효과적으로 중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신조구문 958).

성경은 하나님만이 그분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실함에 있어서 무한하며 영원하며 변함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분만이 기도를 들으시며 그분만이 완전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한마디로 그분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하나님께만 기도가 드려지지 않고 죽은 자를 향해 기도가 드려진다는 사실은 지독한 신성모독입니다! 죽은 자를 부르거나 불러내는 것은 접신하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참조, 신 18:9-11).

오직 한분의 참되고 위대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신자들에게 모든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하지만, 미혹에 빠진 가련한 카톨릭 신도들은 로마 카톨릭 전통에 따라 죽은 자를 부르면서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성경적으로 전혀 보장 받을 수 없는 헛된 기도입니다. 성경은 다른 중보자들을 금하는 반면, 카톨릭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속 사역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정하신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입니다(참조, 히 9:24).

결론

성경은 참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라고 말합니다(참조, 렘 23:6). 복음의 찬란함은 신자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고정되는 것입니다. 이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오른 편에 있는 기쁨의 강으로부터 한없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영생은 그분의 완전한 생명이고, 그분은 모든 것을 충만하게 채우는 희생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핵심인데, 그 이유는 참 신자는 언제나 생명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지속적으로 더욱 바라보는 것을 배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 교황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얼마나 다르며 그 결말과 운명에 있어서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로마 교회는 자기 교인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칠성례와 그 성례를 붙들어주는 지배 체계를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복음은 물리적인 표시들을 바라보도록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자들은 성경의 지시에 따라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끝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신실하게 주께 고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분 안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은혜의 원천이시기에 모든 신자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신자의 생명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의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생생하게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는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자들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신령한 생수를 마시며 성경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주께서는 매우 엄중한 말로 진실하고 독실한 바리새인을 대면하여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요 대표인 대제사장 가야바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

바리새인들처럼 오늘날 수많은 카톨릭 신자들은 교황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이 계속 교황을 ‘거룩하신 아버지’로 인식한다면 이는 바리새인들처럼 참 하나님과 아들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참조, 요일 2:22,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라”). 죄 가운데 계속 거하는 자는 반드시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신자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생명과 완성된 희생 제사만이 신자를 위한 대속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공의가 만족되는 가운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면 그에 상당하는 희생이 치러져야 했습니다. 그 희생은 바로 십자가에서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보혈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참 신자만이 영원토록 죄와 사탄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깊은 감사 가운데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